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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대한 회고록

초등생의 노란 바지


초등학교 때 난 ‘공부 잘하는 못난이 여자아이’라는 유형에 속했다. 나한테 뒤진 남자아이들이 분풀이로 그랬는지, 종종 나의 어색한 머리 모양이나 서툰 옷차림을 놀리곤 했다. 내가 외모에 무관심했던 건 아니었다. 놀림을 받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강박적일 정도로 자주 머리를 매만지고 엄마에게 옷투정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평소에 자꾸 머릿가르마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습관을 한 번은 어떤 아이가 흉내 내면서 반 전체를 웃긴 적도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또 어떤 아이는 내가 한 치수 큰 신발을 신는 걸 어떻게 알아보고 ‘왕발’이라며 놀리기도 했다. 그저 내가 너무 빨리 자라나니까 엄마가 좀 큰 신발을 미리 사줬을 뿐인데…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어린 시절 차림새에 대한 놀림은 큰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다. 요즘이었다면 ‘왕따’라는 일괄적인 명칭이 붙여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옷’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먼저 생각할 것 같다. 옷 때문에 창피당했던 기억 말이다. 그런 과거를 거쳐 우리는 지금의, 옷을 잘 입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성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언제나 반에는 차림새가 덜떨어진 아이들이 몇명씩 있었다. 가난과는 별개로, 아마도 사회화가 좀 늦어진 아이들이었을 텐데, 그 징표가 외모와 행동거지뿐 아니라 ‘옷’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려서부터 옷차림에 센스가 있었던 아이들은 대개 일찍부터 사회성이 발달한 축이었고 대개는 또래 중에 리더 역할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유지’라는 친구가 있었다. 유지는 그 시절에 이미 샛노란 바지에다가 핑크색 잠바를 떨쳐입고 긴 파마머리를 약간 탈색해 갈색으로 늘어뜨리고 다니는, 멋쟁이였다. 당시에는 김민재아동복이라는 개구리 로고의 고가 아동복이 화제였는데, 우리 반에도 그 아동복을 입고 다니는 아이가 몇 명 있었지만, 어디서 샀는지도 모르겠는 옷들을 배합해 입는 유지의 센스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물론 유지는 언제나 우리의 리더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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