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았다.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꽃과 나무를 사랑하던 엄마가 온정성을 다해 마당을 가꾸었다. 엄마는 또 관심사가 자주 바뀌는 사람이라 마당의 모습은 해마다 변하곤 했다. 어느 해는 배수구 근처에 보라색 창포꽃이 아름답게 피었고 또 어느 해는 잔디밭 한쪽 텃밭에 난초 비슷한 부추잎과 하얀 별 같은 부추꽃이 빼곡히 피었다. 아치 틀을 세워 분홍 장미 터널을 만들기도 했다. 정성스레 기르던 포도덩굴이 무성해지다가 마침내 까만 포도알들이 익었을 때는 어린 나도 무척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엄마가 마당 한 구석에서 토끼를 두어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뽑아 활용할 곳을 찾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나무 판자에 톱질과 못질을 해 네모난 상자를 만들고 한쪽 면에 철망을 댔다. 그래서 안이 들여다보였고 먹이를 찔러 넣을 수 있었다.
가끔 토끼들이 허술한 철망 문을 탈출해서, 온가족이 잡느라 난리가 나기도 했다. 나도 아주 어릴 때, 내 앞으로 풀쩍풀쩍 뛰어온 다음, 왠일인지 가만히 있던 토끼를 잡은 적이 있다. 엄마가 “잡아, 귀를 잡아!” 해서, “으, 으…어떻게...” 하다가 위로 뾰족 솟은 두 귀를 엉겁결에 움켜잡았다. 귀는 연골과 털로 구성되어, 아주 딱딱하지도 않고 아주 말랑하지도 않으면서 털이 까끌한 느낌이 기묘했다. 나는 질겁해서 금방 놓쳐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얼마가 지나 우리 집에서 잔치 비슷한 게 벌어졌다. 뭔가 거한 고깃국을 잔뜩 끓이고 손님들을 초대했다. 내 앞의 커다란 대접에 담긴 내 몫의 고깃국을 먹는데 맛이 희한했다.
“엄마, 이거 무슨 국이야?”
“토끼.”
“...”
어린 나는 슬프기도 하고 충격도 받았지만 그냥 잠시 말없이 있다가 국을 대충 절반 정도까지 먹었던 것 같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동물을 죽여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는 깨닫게 된 나이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딱히 철창 속 토끼들에게 정을 주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동물은 우리집 개였고 그녀는 무사했다.
그후 엄마는 토끼들의 털로 멋들어진 코트를 만들어서 입고 다녔다. 고기보다는 그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에 그런 걸 만들어주는 곳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가끔 나를 데리고 가던 남대문 시장의 어느 골목을 헤매다 보면,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도살해 고기는 내어주고 털가죽은 손질해 코트를 만들어주는 가게가 존재했던 걸까? 그 시절에는?
토끼 털 코트는 밍크 코트보다는 야성적이고 감각이 있어보였으며 훨씬 털이 길고 보드라운 느낌이 있었다. 나도 가끔 그 털코트를 슬슬 쓸어보곤 했는데, 왠지 슬프면서도 달콤한 느낌이 전해져 오곤 했다. 그런 걸 멜랑콜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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