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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대한 회고록

구두표와 상품권, 회사 복지와 돌고 도는 선물

요즘도 직원들에게 의복비를 지원하는 회사들이 있긴 하던데,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들의 월급 가운데 종종 의복비라는 항목이 책정돼 있었던 것 같다. 젊어서 한 번 회사를 들어가면 정년까지 쭉 다니며, 근무 시간뿐 아니라 일상 생활(점심, 저녁)과 여가 시간(주말 등산, 여름 휴가)도 회사에서 해결하고 가족들까지 회사의 일원으로 취급되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나의 아버지 회사에서는 의복비를 그냥 월급의 일부로 책정해서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특정 상점들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의 형태로 지급해줬다. 상품권이 가능한 상점은 대부분 명동에 위치한 양복 가게였으니, 애들이나 아내의 옷은 주로 (생활비를 쪼개어) 시장에서 사게 돼있긴 했다.

 

그래도 가끔 엄마가 나랑 동생을 데리고 명동으로 나가 좋은 옷(때때옷)을 사줄 때가 있었다. 친척 결혼식이라든지 명절을 앞두고 있을 때 말이다. 사실 사춘기가 지나 내 키가 다 자란 후에도 아버지 직장에서 나온 상품권으로 명동에서 산 옷이 있는데, 중년이 된 지금도 멀쩡히 보관하고 있다. 차마 입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난생 처음 산 비싼 옷을 버릴 엄두가 안 나서 말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 직장에 다닐 때는 웬만한 회사가 아니고서야 더 이상 의복비라는 걸 월급 항목에 넣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식대는 여전히 지원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신 그 시절엔 구두표가 선물용으로 유행이었다. 금강이니 에스콰이어니 하는 구두표를 종종 선물로 주고받았는데, 나의 경우엔 주로 졸업식이나 생일 때 집안 어른들에게서 받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구두표는 돌고 돌았을 것이다.

 

게다가 구두표는 동네 구두 수선소 같은 데 가면 팔 수도 있었다(이른바 ’). 또는 반대로 거기서 할인된 구두표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구두를 사야 할 일이 있을 땐 구두 수선소에 가서 구두표를 일부러 사가지고 구두 가게에 가야 현명한 행동이었다.

 

요즘엔 신발 브랜드가 다양해져서 그런지 구두표가 예전처럼 많이 유통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직장에서 명절 선물로 직원들에게 신세계상품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인터넷이나 케이블 신청할 때도 받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도 물론 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예전의 구두표처럼 애매한 선물이 필요한 사이에서 돌고 돌기도 하는 것 같다.

 

얼마전에 정말 오랜만에 신세계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받는 기분은 황송하기도 했고 조금 섭섭하기도 했는데, 결국 거의 두 달 이상을 사용하질 못하고 지냈다. 아예 들고 나오지 못했거나, 막상 들고 다니다가 사용할 순간이 와도 잊어버리고 사용하지 못하거나 했다.

 

그러다가 맘먹고 이마트에 가서 전부 만원짜리 소액권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방방곡곡 카페 유람을 시작한 이래 통 가지를 않던 스타벅스에 가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디카페인 두유 라테를 마시니 심장도 좀 덜 뛰고 좋았다. 스타벅스 특유의 편안한 매장 분위기도, 그 동안 다녔던 힙한 카페들에서 쌓인 피로를 좀 위로해주는 듯도 했다. 이제 패션(유행)은 옷이 아닌 카페에서 구해야 하는 시대라고 분석해도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