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재봉틀을 빌리다가 산 새 재봉틀

엄마에겐 낡은 재봉틀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주었다. 입체보다는 평면에 가까운 옷, 가끔은 봉제선이 비뚤비뚤하기도 한 옷이었지만 아직 어렸던 나랑 동생은 신기해하면서 입곤 했다. 우리가 점점 커가며 집에서 만든 옷 같은 건 안 입으려 하게 됐고, 엄마도 ‘흥’ 하면서 ‘이제 나도 힘들어서 옷 같은 거 안 만들거야.’ 했다.
난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 잘 만들진 못했지만, 인형 옷 같은 걸 만들려고 애를 쓰면서 엄마에게 재봉틀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가사 수업 바느질 시간에 배운 재단법을 복습할 순 있었지만, 재봉틀 사용법은 새롭게 익혀야 해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문득 심심해지면, ‘엄마, 나 재봉틀 좀 가르쳐줘.’ 하고서 옷장 깊숙히 처박아둔 재봉틀을 둘이 같이 끙끙대며 꺼냈다. 그러고서 조금 배우다가 포기하고 또 조금 배우다가 포기하면서, 결국은 재봉틀 사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
엄마와 따로 살게 된 이후에는 엄마 집에서 재봉틀을 빌려 왔다. 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시적 백수가 되었을 때, 한 달 정도 놀면서 팽개쳐둔 집안일을 대대적으로 벌일 때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하필 재봉질을 하다니, 먼 바다 건너 밀려드는 기성복이 넘쳐나고, 맞춤복마저 드물어진 시대에 직접 의류(?)를 만들다니. 뭔가 레트로? 자급자족? 의미심장한 것도 같은데 의미를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재봉틀을 빌려와서 나의 집에서 만든 건 의류는 아니었다. 나의 집을 꾸밀 커튼이나 쿠션 같은, 인테리어 소품 아니면 침구류였다.
넓지 않은 집에 자리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책상과 식탁을 싹 치우거나, 가구들을 쫙 밀고 생겨난 바닥 공간에 접이식 밥상을 세팅했다. 그러고 나선 동대문 직물 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천을 고르고 흥정하고 사가지고 왔다. 실 걸기, 바늘 꿰기, 실 감기, 스위치 조작하기.. 꽤 복잡한 재봉틀 사용법을 잊어버릴 만도 했지만, 수십 년째 보는 연두색 낡은 기계는 늘 똑같았기 때문에, 덮개를 벗겨내고 더듬더듬 만지다보면 방법이 생각나곤 했다.
길어야 2주 정도, 다 쓸 때쯤이면 엄마는 꼭 재봉틀을 다시 찾았다. 다 썼냐고, 돌려달라고. 쓰지도 않으면서 그래, 하고 내가 슬쩍 빈정 상해 하면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빌려쓰는 재봉틀이 서러웠을까. 난 결국 새 재봉틀을 샀다. 하얀색 싱어 제품으로 샀다. 그러고선 사용법이 꽤 달라 고생을 했다. 예전처럼 복잡하지 않아지도록, 많이 진보했지만, 그래서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서도 정독하고 인터넷도 찾아보며 모든 걸 새로 익혀야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다시는 직장을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였으니까. 세월아 네월아 재봉틀을 익히고, 종이에 연필로 여러 가지 모양을 디자인 해보며, 새로 만들 침구류를 궁리했다. 그러고는 아예 솜까지 구매해서 요를 만들었다. 침대 생활도 그만 두기로 했으니까. 베개와 이불보도 만들었다. 동거인이 보고 기겁을 했다. 이불집 차릴 거냐고 타박을 했다. 훗. 하지만 내가 원한 대로 천연 솜을 두툼하게 넣고, 이제는 사라진 과거 시대의 유물인 ‘요’를 주문하려면 백만 원은 들지 않을까 싶었단 말이다.